1.
  • 69쪽 사료 읽기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 빼고 
  • 69쪽 2번째 문단 부터 끝까지 + 탐구활동
  • 서경천도 운동을 둘러싼 대립
'문벌 귀족 사회의 모순이 더 심화됐다.' (김부식이 개경파, 묘청이 서경파인것만 알아두래)

2.86쪽  신분 상승의 가능성 부분
'고려 사회가 신라 골품제 사회에 비하여 좀 더 개방적이었음을 보여준다.'

3.88쪽 '부모의 재산은 ~~' 부터 끝까지
'여성의 지위가 다른 시대보다 상대적으로 높았다'까지

중요 싸움들
백고무신(삼국이 망하는 순서)
29쪽 연표
수(581~618) - 남북조시대 이후 
당(618~907)

수의 문제
612년에 살수대첩(을지문덕)
후 국력 약화로 멸망(113만대군잃음)
당 태종때 대규모 군대로 침공


29쪽
살수대첩
  • 고구려 vs 수 을지문덕찡
안시성 전투
  • 고구려 vs 당 연개소문
    • 연개소문이 이에 대비해 천리장성을 쌓았었음
    • 이때 쌓은 천리장성은 세로고 고구려때 쌓은건 가로임.

거란 1차 서희 담판 강동6주 획득
거란 2차 양규가 몰아냄(유한 피셜)
거란 3차 귀주대첩
  • 고구려 vs 거란 강감찬 (3차 침입)

매소성 전투
기벌포 전투
  • 백제, 고구려 유민과 신라가 힘을 합쳐 당군을 몰아낸 전투

관산성전투
  • 나제 동맹 깨진 전투(성왕 vs 진흥왕)

백강전투
  • 나당연합군과 백제부흥군과 왜 연합군이 싸운 전투
  • (부여풍(풍왕)은 제 32대 비정통 국왕으로 의자왕의 아들이다)

처인성 전투// 안 중요
  • 몽골 vs 고려의 김윤후 (무신정권 시기, 몽골의 2차침입 중에 일어남)


황산벌 전투
  • 백제 마지막 전투 (계백 장군) (660년)

주요 군대들
도방 – 최씨정권 호위무사 원래는 사병(?)
삼별초 – 최씨정권 때 만듦(?) [http://mahan.wonkwang.ac.kr/nonmun/2006non/7.htm]
최충헌 다음 계승자인 최우가 만들었다 하네요
별무반 – 여진정별 특별부대(?)

10쪽 무리 지어 살며 채집과 사냥을 하다 부분
11쪽 농사를 짓고 정착 생활을 하다 부분
12쪽 '신석기 시대에는 ~~' 부터 '~예술품도 만들었다'까지
13쪽 '기원전 2000년 ~~부터 ' ~~ 반영한 것으로 이해된다' 까지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
입음 (가락바퀴, 뼈바늘로 유추)

사냥과 채집
농경과 목축
관개농업발달, 벼농사시작(반달 돌칼로 유추)
막집, 바위그늘, 동굴
움집

유물
주먹도끼, 찍개
(하나로 여러 용도)
찌르개, 밀개, 자르개
(쓰임새가 정해짐)
돌도끼, 돌화살촉
빗살무늬 토기, 민무늬 토기
고인돌 ( 계급사회 암시)
민무늬 토기
특징
불, 언어 사용
활 발명
씨족간의 족외혼을 통한 부족사회
평등한 공동체(계급 X)
농경 발달 -> 잉여 생산물 발생 -> 빈부 차 발생
위와 더불어 정복활동 활발 -> 계급분화 -> 지배자(군장) 등장

도시국가 출현, 문자 사용
애니미즘 (any) - 정령( 자연계의 모든 사물에는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간에 영혼이 있다는 생각이나 신앙. 또는 여기에서 종교의 기원을 찾는 학설)
토테미즘 - 동식물 ( ex: 곰 토템 부족)
샤머니즘 - 무당과 그 주술
+ 영혼은 없어지지 않는다 하여 조상을 숭배

조개 껍데기 가면, 얼굴 모양 토제품 - 원시적인 예술품


혹시 몰라서 적는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기
70만년 전
기원전 8000년
기원전 3000년
한반도는 
기원전 2000~1500년


고조선때의 중국의 연표
고조선 -> 기원전 194, 위만조선 -> 기원전 108, 한 무제의 대군에 멸망


16쪽 '고조선은 ~' 부터 '~~관직도 두었다'까지
17쪽 위만, 고조선의 권력을 잡다 부분
17쪽 고조선 사회의 이모저모 부분

고조선시기의 중국 연표
기원전 403-221
기원전 221-206
기원전 202 - 서기220


진, 초, 연, 제, 한, 위, 조
진(秦)
(漢)


고조선은 상, 대부,군장이라는 관직을 두고었고 전국 7웅 중 하나인 연과 대적할 만큼 성장함

진한 교체기(기원전 206~202)까지 중국에 혼란이 계속되서, 고조선에 유민이 늘어났고, 결국 기원전 194에 위만 조선이 되었다.
위만조선은 한과 진(辰)사이의 중계무역으로 이익을 벌었다  (진국(辰國)은 한반도 중부~남부에 걸쳐 있었던 나라이다)
위만이가 쫴끔 성격이 사나워서 정복활동이 활발했고 무기를 만들려고 철기문화를 적극 수용했다 캄

고조선의 8조법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죽임 : 개인의 생명과 노동력을 중시
남에게 상처를 입힌자는 곡식으로 갚음 : 사유재산 중시
도둑질한 자는 노비로 삼는다 : 계급사회
가부장적 제도는 "한서" 사료읽기 끄트머리 문장으로 유추한다 카네용 (뇌피셜)

부여 부터 삼한까지 제천행사,  풍습 등등 구별할 줄 알아야 함.

나라
부여
고구려
동예
옥저
삼한
풍습
풍습은 없으나
8조법같은 4조목이 있었다
서옥제
처가에 일정기간 머물고 가족을 데리고 다시 돌아오는 것
책화
다른 부족의 영역에 침법하면 배상함

족외혼
민며느리제
제천행사
영고(12월)
동맹(10월)
무천(10월)
없음
5월 수릿날과 10월가을 걷이 에는 계절제를 열었다.
(상달고사)
특)
마가, 우가, 저가, 구가가 있고 이들이 별도로 사출도란 걸 다스 렸다.
부여에서 내려온 주몽이 건국했으니 
부여처럼 가(加)들이 있었다.
읍락마다 읍군, 삼로라는 군장
읍락마다 읍군, 삼로 라는 군장
(책에서 동예랑 싸집어서 설명)
제정분리사회(솟대)이다.
신지, 읍차 : 정치적 지배자

신성지역 소도에는 제사장인 천군이 있다.

외우는 법(?)
부여는 가(加)들이 가축이름을 딴 것부터 보면 농경이란 관련이 없으니 제천행사도 가을(추수)이 아닌 겨울에 한 것

부여 -> 부영(고)
신비술사의 고서
(고)구려 (서)옥제

이것말고 더 좋은게 생각이 안남 ㅠ

동무(천)
옥저는 가족 중심 사회인 듯하다
민며느리제도도 
며느리를 일찍부터 데려와서 가족처럼 먹여 살린다. 

또, 가족 공동 무덤도 있다.
변한은 구야국(훗날 가야)가 통합했다.
즉 변한은 철이 많다.(가야가 그렇듯)

마한은 백제가 통합
진한은 사로국(훗날 신라)이 통합


신분제
삼한과 동일
초기 고구려는 삼한과 동일




호민(호걸 호자 씀), 
하호(집 호), 노비

뜻 풀이를 하면
호걸(귀인)
하호(집은 있는)
노비
특산물
말, 주옥, 모피


단궁(활), 과하마, 반어피(바다사자 가죽)

옥저만 제천행사가 없다.

성씨
고구려는 계루부 고씨, 백제는 부여씨, 신라는 김박석씨, 발해는 대씨이다.

고구려 
태조왕 - 고씨 세습 확립
고국천왕 - 전통 5부를 행정적 5부로 개편(나중에 5부 한번 더 나옴)
미천왕 - 낙랑군 공격 
고국원왕 - 전사 (잘나가다 얘가 똥쌈)
소수림왕 - 불교 수용, 태학 설립, 율령 반포 (원왕이가 똥싼거 다 닦아줌)
광개토대왕 - 다깨부시고 댕김
장수왕 - 남진정책으로 백제를 밀어내고 한강유역을 차지 하였다. (남북조 시대)


27쪽 백제 중흥을 도모하다부분 (무령왕과 성왕)
28쪽 신라의 지증왕, 법흡왕, 진흥왕의 업적

동성왕, 장수왕 때의 중국 연표
남북조 시대 (서기 420~589)

남조와 북조

백제 
동성왕 - 나제 동맹 강화, 중국 남조와 국교 재개(남북조시대) 
무령왕 - 지방에 22담로 파견하여 지방통제 강화
성왕 - 사비 천도 후 중앙관청을 22부, 수도 5부, 지방 5방으로 정비

백제는 콩진호를 좋아하는듯 안그러고선 22가 2번 나올리 없음
백제는 콩진호를 좋아하는듯 안그러고선 22가 2번 나올리 없음

백제 수도 변천사
온조가 하남위례성(다른 말로 한성)에서 건국 -> 고구려 전성기 때 밀려서 웅진 천도 -> 성왕 때 대외진출을 위해 사비 천도 (웅진보다 밑에 있음)

지증왕 - 국호 '신라', 왕호 '왕'으로 바꾸었다.
법흡왕 - 불교 공인, 율령반포, 금관가야 흡수(이때 항복한 김구해는 금관국 전체를 식읍으로 받았다고 함)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한 건 이차돈의 순교 때문임. 또 이 때 불교 종파는 교종이다.
병부(오늘날의 국방부) 및 상대등 제도 설치 (이 상대등은 나중에 귀족들의 권력을 상징하게 됨.)
진흥왕 - 대가야 정복, 화랑도 개편

단양신라 적성비와 4개의 순수비(시험에 나올것같지만 안나올것같고, 또 어떻게 보면 나올것같음 ㅇㅇ) - 시기는 568년으로 남북조 말기임



신라 왕호 변천사 //별로 안 중요함
거서간 -> 차차웅 ->   이사금 -> 마립간 -> 왕



31쪽 '당의 이러한 움직임 ~'부터 '의의가 있다'까지
  • 당과 한민족(?)의 전투는 매소성 전투, 기벌포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 대동강 이남지역, 외세를 끌어들였다는 한계
  • 당을 물리친 자주적 성격, 한반도의 평화, 삼국 문화의 융합에 의의가 있다.

32쪽 '한편, 통일 전쟁 ~~' 부터 해당 페이지 끝까지
통일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왕권이 크게 강화됐다.
태종무열왕(김춘추)는 처음으로 진골출신에서 왕위에 올랐다. (원래는 성골남자만이 왕이될 수 있었으나 하나도 없게됨, 성덕여왕 -> 진덕여왕-> 태종무열왕임) 

무열왕 : 통일전쟁시작
문무왕 : 676년에 삼국통일
신문왕 : 김흠돌의 난 진압(장인어른임) 후 차례로 진골귀족들 뚝배기 뿌셔서 왕권 강화
집사부 강화(왕명), 상대등(법흥왕때 설치한것으로 귀족 세력 대표) 약화, 국학 설립(태학은 고구려의 소수림왕임), 관료전 지급 녹읍 폐지, 통치체제 정비(9주 5소경말하는 듯)
신문왕 업적의 핵심은 그냥 진골귀족 뚝배기 뿌시기인 듯
여기서 어부지리로 6두품세력이 성장하게 된다.



33쪽 페이지 전체 '왕권이 전제화 ~~'부터 '~~ 2정을 두었다'까지
9주 5소경 체제로 편성하여 중앙 집권을 강화하였다.   (신문왕 업적임)
군사조직은 9서당 10정으로 1주에 1정씩 한주에는 2정을 둠.

특) 상수리제도로 지방세력가의 자제를 거주하게 한 것    



34쪽 페이지 전체 ' 무열왕계 직계 후손 ~'부터 '궁예는 송악에서 ~~'까지
위와 더불어 호족의 힘도 성장 -> 6두품 학자(반신라적 태도, 유교바탕) 나 선종불교와 손을 잡음-> 후백제, 후고구려가 세워짐 (각각 900, 901년) 

자료 1,2


37쪽 ' 발해는 중앙 집권적인 ~' 부터 '유민을 이끌고 ~~'까지 
발해의 통치체제 (발해는 외울게 이것 뿐인듯)

676년 삼국통일 완수 후 698년에 건국 됨 (당 말기)
                                                                                                                                
3성 6부제를 수용하였으나 명칭과 운영방식에 독자성이 있었음
행정부 = 정당성, 국무총리 = 대내상
교육부 = 주자감
지방행정 5경 15부 62주 체제 
군사조직 10위


40쪽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하다 부분
41쪽 신라말, 농장은 확대되고 농민은 궁핍해지다 부분 (신라 말기 사회의 특징)

신문왕이 노동력 X 조세만을 징수 할 수 있는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하였다
성덕대왕(여왕 아님, 얘는 신문왕의 차남으로 신문왕 다음다음 왕)이 백성에게 정전을 지급하여 국가가 백성을 지배하려하는 의도를 내비쳤다

8세기말 부터 상대등의 힘이 강해져서 녹읍이 다시 부활 -> 귀족이 대농장 차지하고 온갖 개 ㅈㄹ은 다하고 댕김 -> 농민 봉기가 일어남(적고적, 초적 등이 됨)
(참고로 교종 불교(법흥왕때 공인한 것)은 왕족들의 지지를 받았고, 말기에 유행한 선종불교는 교종 불교를 비판했고 그러니 귀족의 지지를 받았음)


43쪽 위에서 5째줄 '이에 따라 크게 지배층인 ~~' 부터  '고구려의 진대법이 그 대표 사례이다' 까지

삼국 모두 고대 국가로 성장하면서 귀족, 평민, 천민으로 구분되는 엄격한 신분제도가 구성되었다(그 전 연맹왕국단계에는 하호, 호민, 노비임 , 소국인 동예, 옥저는 잘 모름)

고구려는 왕족 고씨와 5부 출신 귀족이 지배층(이 5부가 태조왕이 개편한 것)
백제는 왕족 부여씨와 8성귀족이 지배층
신라는 김박석씨가 지방세력을 통합하는데 골품제라는 독특한 신분제가 마련되었다. 
왕족이 성골, 진골이고 1~6두품은 족장의 세력 크기에 따라 편성된 것이다.


44쪽 엄격한 법으로 사회를 이끌다 부분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엄격한 법을 제정하여 사회를 운영했다고 한다.
부여 4조목은 특별한 언급에도 간통죄가 있으나 교과서에 가부장적 제도라는 말은 특별히 언급되진 않았다.
그러나, 백제의 간통죄에 대해서는 가부장적 사회 모습을 부여준다고 나와있다.

고구려에서는 가난한 농민을 구제하기 위해 진대법을 실시하였다고 한다.

51쪽 도교와 풍수지리설이 유행하다의 첫번째 문단 '불로장생과 ~~'부터 '~펼치기도 하였다'
도교 : 신선과 불로장생을 믿는 것, 백제 산수무늬 벽돌이나 고구려의 사신도같은 거임
 7세기 고구려의 연개소문(안시성 전투)이 불교를 믿는 귀족을 몰아내기위해 장려했다고 한다.
풍수지리설 :
8세기말 (신라 말) 호족들의 지지를 받아 경주(금성)의 운수가 다했다고 개소리를 하고 댕김


52쪽 통일 신라, 유학의 수준이 높아지다 부분

신문왕의 국학 설립
원성왕의 독서삼품과 실시 - 골품제때문에 빛은 못발했음. 


56쪽 마지막 문단 '사찰과 함께 ~~'부터 '~경우도 많았다'까지
  • 50쪽의 1개의 탑 + 56쪽의 3개의 탑, 총 4개 중에서 하나 나옴
쌍봉사 철감선사탑(통일 신라 말), 익산 미륵사지 석탑(백제), 경주 불국사 3층 석탑(통일 신라), 영광탑(발해)
특) 경주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 - 이상적인 비례를 통해 조화와 균형미를 보임 
탑의 의미는 8세기 말에 선종이 유행하면서 , 선종은 참선수행을 통한 깨달음을 중시해서 승려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든 것
후삼국~고려시대 연표
당나라(618년 부터 907년까지)
5대 10국 (907년 부터 960년)

당나라 말이 후삼국 시대의 시작임
고려 건국이 918년인데 비슷함
발해는 거란에게 926년에 멸망했다.


63쪽 민심을 수습하고 호족 세력을 통합하다 부분

태조왕건의 정책


민생 안정 정책
  • 취민유도 (세금을 백성(민)에게서 (취)할 때에는 (도)리가 있어야(유) 한다.)
통합정책
  • 결혼 - 부인이 29명이나됨
견제 정책
  • 기인제도
통치 보완 정책 0
  • 사심관 제도(대호족이 사심관이되어 잔챙이 호족을 처리하는 식으로 견제정책의 성향을 띈다고도 한다) 
불교를 숭상하고 연등회, 팔관회같은 전통을 중시했다 -> 나중에 최승로의 시무28조에서 민생이 힘들다고 폐지하라했음

+ 훈요 10조란걸 남겼는데 시험에 안낼듯

64쪽 노비안검법, 광종, 성종, 최승로의 시무28조 전부 다 

태조가 29명이랑 결혼을 쳐 해놔서 왕의 장인어른이랍시고 왕좌를 노려뎄다.

그래서, 광종이 신문왕처럼 뚝배기를 직접 뿌실수는 없어
 얘네 밥통을 긁어버리려고 노비안검법을 실시하였다.
호족의 노비수가 감소하고 국가에 세를 납부하는 양인이 증가한 것

광종은 인사쪽에도 힘을 썼는데 과거제 실시와 관리의 공복을 제정하였다. (이때 과거제로 신진세력을 등용한 것)

성종보다는 6두품 출신 최승로가 더 중요하다.
최승로의 시무28조를 받아들여서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했다.
최승로 같은 인재를 더 뽑고 싶었는지 교육에 힘써서 
국자감( 국립 고등 교육 기관) 을 설치하고, 경학박사를 파견하였다.

65쪽 오른쪽에 있는 중앙 통치기구(6부 빼고) 
2성 6부제에서
도병마사 - 국방부(얘가 나중에 원간섭기에 도평의사사가 되서 국방문제만 아니라 국정 전체를 관할하게 돼버림)
식목도감 - 국회임  (뜻풀이 법의 눈으로 도시를 보겠다)
상서성에 6부가 있으나, 중서문하성이 실질적으로 지휘했다.

중추원은 군사 기밀과 왕명 출납 (나라의 (중)간 근원(추樞)라는 뜻임)
어사대 - 오늘날의 감사원과 비슷하게 감찰역할이 주였으나 정치권력의 균형을 잡는 역할도 했다.



66쪽 '건국 초에는 ' 부터 '설치되었다'까지
66쪽 군사제도를 개편하다 부분의 '지방군은 ~~ '부터 '~~편성되었다'까지

중앙 집권체제가 강화되면서 
5도 양계를 골격으로 영토체제가 정비되었다.
도는 일반 행정으로 안찰사, 계는 군사 행정으로 병마사 파견됨
도 밑에는 주, 부, 군, 현가 있었고 향 부곡 소 같은 특수 행정역도 있었다.
주현보다 수령이 파견안되는 속현이 더 많았다 // 별로 안중요
지방군은 16~60세 사이의 양인 장정으로 편성됐다. //중요한거 같으면서도 안중요한거 같음

67쪽 마지막문단 '그렇지만 공신이나 ~~'부터 끝까지

공신이나 5품이상의 관리는 음서의 특혜가 주어졌다.
"고려의 관료 체제가 귀족적 특성을 지녔음을 보여 준다"
거란침입과 무신정변때 중국연표
송(960~1279)과 요(거란)[916~1125]

 5대 10국 이후의 왕조로 송 요 고려 여진이 존재하는 시기임
70쪽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다 부분
1차~3차 거란침입 알아둬야 함

결과 :
고려 송,요(거란) 사이의 세력 균형 유지
천리장성 쌓음

71쪽 동북 9성을 개척하다
71쪽 별무반 용어 설명
윤관의 별무반으로 여진을 정벌했음.(여진족과의 전투에서 매번 기병때문에 패해서 만든 특수군)
그래서 얻은게 동북 9성인데 지키기도 힘들고 여진족이 조공을 준다해서 1년만에 되돌려줌

72쪽 밑에서 두번째 문단 ' 최고 권력 기구로 ~~ '부터 '~~기반이 되었다'
정중부 이의방이 무신 정변일으킴 1170년부터 1270년까지 해먹음
무신정권은 최충헌 이후로 안정 됐다. 


최씨 가문이 해먹은 짓은
군사력
  • 도방설치(사병기관)  - 개인 경호 부대
  • 삼별초 
정치력
  • 교정도감설치 - 최고 권력기구
인사력
  • 정방설치(최우가 설치)


73쪽 농민천민의 봉기하다의 '서북 지방에서~~' 부터 페이지끝까지 
73쪽 탐구활동 농민과 천민의 봉기

무신 정변시기에 천민 출신 이의민이 권력을 잡는 등 신분제가 흔들리게 됐다.
이와 더불어서, 공주 명학소에서 망이망소이의 난이
전주에서 관노비가 난을
경상도에서 김사미와 효심의 봉기가 세력을 떨쳤다.
공주(사비근처?) 명학소
망이와 망소이의 난
전주
관노비들
경상도
김사미, 효심
봉기하면서 수탈에 대한 시정, 신라의 부흥같은 왕조 질서 부정 등을 요구했다. 

최충헌의 집권 이후에는 강력한 억압과 회유로 봉기가 수그러 들었다.
특히 최충헌의 사노비인 만적이 난을 일으키려다가 적발됐다. /
만적의 난이 젤 중요 한데, 
"차별적 신분 질서를 극복하려는 신분 해방 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대몽항쟁시기
몽골제국( 1206년 - 1264년)
원(1271~1368)

64년에 제국이 4분할 된다.
1271년에는 5대 대칸인 쿠빌라이 칸이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기고 국호를 원으로 개명한다. 
초대황제는 당연히 쿠빌라이 칸이고
1279년 남송을 비로소 정벌한다.



76쪽 '14세기 중엽, ~~'부터 '적극적인 개혁을 추진하였다'까지
76쪽 '공민왕의 반원 개혁정치는 ~~ 부터 '태도를 취하였다 '까지

최씨정권이 무너짐과 동시에 원과 강화하였다.(원은 1271년에 건국, 무신정권은 1270년에 무너짐) 

공민왕
대외적 정책(반원적정책  - 원과 대항하기 위함)
  • 기철이 사살(친원세력 숙청)
  • 정동행성 폐지
  • 쌍성총관부 공격하여 철령이북 영토를 회복함 (영흥만 쪽 화주에 쌍성총관부, 영흥만 밑에 철령)
대내적 정책 (자주성회복정책 - 권문세족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함)
  • 신진 사대부 - 광종때만든 과거제로 신진사대부를 적극 등용
  • 정방 폐지(최우가 설치한 인사기관)
  • 승려 신돈 등용 //중요한건가??
  • 전민변정도감 설치 (백성의 땅을 변상하고 정정해주는 기구)

의의 
신진사대부가 크게 성장한다. 
공민왕이 키웠으니 당연히 원을 배척하고 명에 우호적이였다. 
또 성리학을 받아들였다. //별로 안중요

78쪽 1, 2번째 문단 '호족 세력이 ~~' 부터 '~~ 다시 고쳤다'까지
전시과는 전지와 시지를 나눠주고 수조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한 제도를 말한다.
전지는 곡식수확 땅, 시지는 땔감 땅, 수조권은 세금을 받을 수 있는 권한

전시과의 변천과정
역분전 -> 시정 전시과 -> 개정 전시과 -> 경정 전시과

태조
역분전
태조 때 통일 과정에서 공을 세운 이들을 치하하기 위함.
관품에 상관없이 공과 인품, 그리고 충성도를 반영
경종 (광종이 공복제정한 이후)
시(비로소)정전시과
인품과 공복을 기준으로 지급(인품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아 역분전의 성격이 남아있는 제도)
목종(성종이 2성6부체제를 잡은 이후)
개정전시과
통치 체제가 확립돼서 관리의 높낮이인 18등급으로 나누어 지급
문종
경정전시과
땅이부족해져서 현직 관리에게만 줌

85쪽 중류층, 지배층의 말단에 자리 잡다 부분
85쪽 생산활동을 담당한 양민 부분


귀족, 중류층, 양민 까지를 양인이라고한다.
양민은 일반 농민인 백정과 향 부곡 소민으로 나뉜다.
향 부곡은 농업 종사, 소는 수공업에 종사했음. // 별로 안 중요함

향 부곡 소민이 받은 차별


시기
백제(동성왕)
백제(성왕)
통일신라(신문왕)
발해(선왕)
고려(성종)
현종 (성종 다다음왕)
통치체제
지방에 22담로 파견
중앙 22부
수도 5부 
지방 5방
집사부(왕명)
상대등
3성6부제

정당성
주자감  = 교육부
정당성 = 행정부
대내상 = 정당성 대빵
2성 6부제 
상서성이 6부밑에 있으나 실상은 중서문하성이 지휘함

도병마사, 식목도감

12목에 지방관 파견

삼사 - 회계담당
(조선에도 삼사있음)
X
영토체제
X
X
9주 5소경
전략적 요충지에 5경을 설치하고
15부 62주 밑에 현을 두어서
X
5도 양계
5도는 일반행정이고 안찰사 파견됨

양계는 군사 행정이고 병마사 파견됨
군사조직
X
X
9서당 10정
10위
X
//중앙군은 시험 X
지방군 
일반 군현에 주둔하는 주현군과
양계를 지키는 주진군으로 구성됨

고구려
고구려
옥저통일신라(신문왕)고려(태조)
고려(태조)
제도이름
서옥제
진대법

민며느리제
상수리제도

지방 세력가의 자제를 일정기간 수도에 머물게 한 것
기인제도

자제를 볼모로 삼아 두고 출신지의 일을 자문하게 함

(상수리랑 거의 비슷함, 상수리도 거의 볼모느낌이 있음)
사심관 제도
-일(사)을 (심)문하는 (관)리

중앙의 고위 관직인 지방 세력을
출신지의 사심관으로 임명하여 
통제하게 한 제도이다.